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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1] 디지털 외로움과 전체주의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철학자 해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고향 독일의 민주주의 몰락과 나치당 집권, 그리고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했다. 홀로코스트 기획을 담당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추후 목격하며, 아이히만 역시 너무나도 하찮고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악의 평범함’을 주장한 그녀는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하나 남겼다. 바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체주의는 인간의 외로움을 통해 가능해진다”는 말이었다.
왜 외로움이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동물보다 특별히 더 강하지도, 빠르지도 않기에 협업만이 인류 역사 대부분에서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들과 함께 있으면 안전하지만, 홀로 남으면 위험하다! 여전히 우리 뇌 속 깊숙이 박혀있는 본능 중 하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인간은 동시에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 유전자는 혼자 선택하고,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라고 명령하지만 ‘전체’와 사회 중심에서 멀어지는 순간 우리는 다시 불안함과 외로움을 느낀다.
아렌트는 ‘외로움’과 ‘고독’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고독은 혼자 있지만 자신만의 정체성과 자아가 뚜렷한 이들의 상태를 표현한다. 예술과 과학, 그리고 인류 역사상 혁신의 대부분은 고독을 조건으로 한다. 반대로 아직 독립적 자아가 완성되지 않은 이들은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의 무게를 느낀다. 홀로 남겨진 불안함을 버티기 어렵기에 외로움은 ‘강한 리더십’과 ‘강한 국가’, 그리고 개별적 자아가 녹아 들어갈 수 있는 전체주의 사상을 추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교류가 주류가 될 미래 메타버스 시대. 어쩌면 메타버스 사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외로운 인간들의 시대가 될 수도 있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극대화 해준다는 메타버스는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가장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김대식의 메타버스 사피엔스] [2] 각자의 진실이라는 궤변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

21세기에 다시 핵전쟁의 두려움을 상기시켜 주고 있는 러시아. 신기하고도 불안한 현실이다. 1990년대 초 구소련이 몰락하고 러시아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한국인들이 편하게 러시아로 관광과 유학을 가고, 러시아인들 역시 한국에서 사업과 관광을 할 수 있었다. 그러던 러시아가 이제 우크라이나를 침략하고 우리는 유럽 한복판에서 다시 최악의 도시전과 제노사이드(집단 살해)를 목격하고 있다. 어디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단순히 푸틴이라는 한 정치인이 이성을 잃은 걸까? 아니면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푸틴의 정책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러시아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Aleksandr Dugin). 최근 독일 언론에서 그의 믿음을 소개한 적이 있다. 포스트모던 철학에 따르면 어차피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두긴은 주장한다. 모든 진실은 누군가의 믿음이다. 고로 러시아인들의 믿음은 러시아의 진실이고, 러시아인들의 행동은 러시아의 정의다. 미래 세상은 핵무기로 무장한 러시아, 미국, 유럽, 그리고 중국이 지배한다. 상대방 영토를 침략하면 핵전쟁이 날 수 있겠지만, 각자의 영향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개별 진실”과 “개별 정의”이기에, 서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 진실이자 정의라고 두긴은 주장한다. 결국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에 러시아가 간섭하지 않았듯이, 미국도 이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너무나도 터무니없지만, 푸틴과 러시아 권력층, 그리고 많은 러시아 시민이 믿고 있기에 더욱 더 위험한 두긴의 철학. 현대판 라스푸틴이라고 하는 두긴의 궤변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인터넷 정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가짜 뉴스가 늘어나기에 역설적으로 진실과 지식이 사라져가는 오늘날. 인류 보편적 가치와 객관적 진실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암흑한 21세기 미래를, 푸틴과 두긴은 우크라이나에서 미리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